08 Aug. 2014
지난호보기
우리들愛

편지공모 우수작

헤어짐을 앞 둔 너희들에게

김미나 (울진 한수원꿈나무어린이집)

저는 일곱 살 귀염둥이 친구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교사입니다.
안 그런 분들도 계시겠지만 ‘일곱 살 남자친구는 어떤 모습일까요?’ 하는 질문을 받으시면 ‘장난꾸러기’, ‘말썽꾸러기’, ‘미운 일곱 살?’을 떠올리시겠지요? 저 역시 만 5세반을 맡게 되면서 ‘말썽꾸러기 친구들과의 기싸움에서 절대 지지 않을 거야’ 하는 다짐 아닌 다짐을 하곤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각오가 무색할 만큼 저희 반 친구들은 너무 순수하고 마음이 예쁩니다. 여자친구들이 드레스를 골라주면 싫은 듯하면서도 거절하지 않고, 여자친구들이 블록을 정리하다보면 ‘야, 우리가 도와주자’ 하며 서로 나서서 도와주기도 한답니다. 화장실에 가서는 ‘야, 여자친구들 다 나올 때까지 기다려.’ 하고 기다려주기도 하지요. 여자친구들을 잘 도와주고 위하는 우리 남자친구들 너무 예쁘고 귀엽지요?

이렇게 예쁘고 귀여운 남자친구들 중에 윤준이라는 친구가 있어요. 똘망똘망 큰 눈이 귀여운 윤준이는 ‘산호’라는 여자친구를 좋아하지요. 수업 시간에 산호와 눈이 마주치면 손가락으로 하트를 만들어 보이기도 하고, 자유선택활동시간엔 산호와 같이 놀이하기 위해서 산호의 주변을 서성거리기도 해요.
3월 어느날, 산호의 생일파티에 초대받은 윤준이가 언어영역에 있는 편지지를 가져와 ‘선생님, 산호한테 편지 쓸 거예요. 글자 적는 것 좀 도와주세요.’ 하고 도움을 요청하네요. ‘뭐라고 적을 거야?’ 하고 물으니 ‘산호야, 생일 축하해. 친하게 지내자.’ 하고 적고 싶대요. 장난기가 발동한 저는 이면지에 ‘산호야, 생일 축하해. 사랑해. 우리 꼭 결혼하자.’ 하고 적었지요. 제가 적은 이면지를 보며 편지지에 따라 적은 윤준이는 입이 귀에 걸린 채 하원 후 산호의 집에 놀러갔어요.

다음 날 아침 일찍 등원한 윤준이에게 ‘어제 편지 전해주니 산호가 기분 좋아했어?’ 라고 물으니 ‘산호 엄마가 편지 읽고 나서 하하 웃으셨어요’ 하고 이야기하더군요. 그런데 우리 반에 슬픈 소식이 있어요. 우리 윤준이가 곧 멀리 이사를 가게 되었어요. 이사 소식을 듣는 순간 ‘싫어. 나 꿈나무어린이집에 다닐 거야’ 하며 몹시 슬퍼했다고 어머님께서 전해 주셨어요. 이사 준비로 그동안 열심히 다녔던 태권도 학원을 정리하고, 친구들에게도 ‘우리 이제 못 만나.’ 하고 미리 작별인사를 하기도 합니다.

하루는 가정통신문을 아이들의 가방에 넣어주면서 산호의 가방을 보게 되었어요. 편지 두 장이 들어 있더군요. 영어 수업을 받고 있는 친구들 몰래 편지를 엿보았어요. 한 장의 편지엔 ‘산호야, 내가 너 많이 좋아하는 거 알지?-윤준이가’ 또 한 장의 편지엔 ‘산호야, 태풍 너구리가 온대. 위험하지 않게 조심해-윤준이가’
귀여운 친구의 편지에 마음이 뭉클한 건 왜 일까요? 3월엔 연필 잡는 것조차 어색해보이던 우리 윤준이가 이젠 저의 도움 없이 또박또박 글자를 쓰고, 언제부턴가 마음을 솔직히 표현하지 않고 감추며 사는 저에겐 자기 마음을 표현하는 일곱 살 친구의 마음이 예쁘게만 보입니다. 키는 작아도 목소리도 크고 줄넘기를 잘 하는 우리 윤준이. 아직 글자 적는 것은 서툴러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우리 윤준이. 매운 음식 잘 못 먹어서 그만 먹어도 된다는 제 말에도 눈물 흘려가며 김치를 다 먹고 마는 우리 윤준이.
이제 일주일 후면 이사를 가게 됩니다. 처음엔 ‘이사’ 이야기만 나와도 표정이 굳던 우리 윤준이가 이젠 마음의 정리가 되었는지 ‘나중에 놀러오면 만날 수 있잖아요’ 하고 오히려 저를 위로하기도 합니다.

윤준아, 우리 윤준아.
벽 뒤에 몰래 숨어 선생님을 놀라게 하기도 하고, 교실에 벌레가 나타나면 자기가 잡겠다고 나서기도 하고, 매일 매일 귀여운 장난들로 선생님을 즐겁게 해 주던 우리 윤준이가 떠나면 우리 교실은 아주 허전할 것 같아. 한사랑반 친구들도 귀여운 윤준이를 많이 그리워하겠지? 그래도 윤준아. ‘이별은 새로운 시작’이라는 말처럼 앞으로 윤준이는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하게 될 거야. 더 큰 유치원에 가서 새로운 친구들도 많이 사귀게 될 거고, 울진에서 경험할 수 없었던 새로운 경험들을 많이 하게 되겠지? 윤준아, 이사 가서도 지금처럼 씩씩하게 지냈으면 좋겠어. 우리 언제나 서로를 응원하면서 즐겁고 재미있게 지내자.
선생님이 늘 이야기하는 ‘긍정의 마음’ 알지? 윤준아, 언제나 파이팅! 응원할게.

발행일 : 2014. 10. 1 | 전화 : 02-6360-6242 | 웹진 <아이사랑>은 두 달마다 우리 아이를 사랑하는 독자들과 만납니다.
Copyrights(c) 2009~2014 <웹진 아이사랑> All Rights Reserved. 웹진 아이사랑의 모든 콘텐츠에 대한 무단도용이나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