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육아맘의 하루 일과 엿보기
아이가 잠들고 몇 분이 흘렀을까, 엄마는 까치발로 방을 나옵니다. 거실 불을 켜자 눈이 시리게 번잡스러운 장면이 펼쳐집니다. 주방 조리대 위에는 미처 소독하지 못한 우유병 여러 개, 개수대에는 켜켜이 쌓인 그릇들, 캐릭터가 그려진 놀이 매트 위에는 흩어져있는 알록달록한 장난감과 양 날개를 펼친 채 뒤집힌 책들이 보입니다. 할 일은 순서대로 기다리고 있지만 어쩐지 내키지 않습니다. 현란한 거실의 불을 딱 끈 채, 내가 있는 곳에만 스포트라이트가 비춘다면 어떤 걸 하고 싶으세요? 상상해보세요. 이때부터 자유시간이잖아요!
엄마의 출출 세포가 화나기 전에 냉장고 문을 엽니다. 무알콜 맥주의 냉기가 손으로 전해오고 캔을 딸 때 ‘딱!’ 소리에 체증이 내려갑니다. 매운 걸 못 먹는 아이 때문에 참았던 떡볶이를 연신 먹다 보면 혀끝에서 스트레스가 증발합니다. 꿀 같은 시간이 지나면 다시 현실입니다. 미뤄놓은 숙제로 가득한 아침이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다시 피곤한 몸으로 눈을 뜨면 말갛게 앳된 아이의 얼굴을 보입니다.
“엄마, 오늘만 어린이집 안 가면 안 돼?” 애처로운 눈빛으로 사정하듯 말하는 아이를 달래서 버스에 태웁니다. 몇 시간 후 아이가 하원하고 나니 표정이 좋지 않고 미열이 있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부랴부랴 병원에 다녀오며 ‘컨디션이 좋지 않아 어린이집 안 간다고 한 거구나.’ 싶어 죄책감이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어제 늦게까지 본 드라마는 현실을 잊을 정도로 재밌었지만, 아무리 커피로 수혈해도 피로감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퇴근한 남편이 저녁 먹자마자 소파에 앉아 핸드폰을 보고 있을 때 부탁합니다.
“오늘 재활용 쓰레기 버리는 날인데, 자기가 해줄 수 있어?”
“응, 이것만 보고 할게.”
남편은 폰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고 건성으로 답합니다.
지금 밤 9시 넘었어.
이제 애 재워야 하는데 바로 해주면 안 돼?”
“이것만 보고 한다는데 왜 그렇게 재촉해?
나는 퇴근해서 쉬지도 못하냐?”
“그러면 나는? 애 아파서 병원 다녀오고 집안 일하느라
잠깐 앉아있지를 못했는데 자기는 퇴근하고 폰만 보고 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