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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아이사랑 제62호] 부부탐구중

부부탐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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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가족을 두고 사회를 이루는 최소 단위라고 하죠. 바로 우리 자신을 세상에 있게 해주었으면서, 앞으로 새 생명이 탄생할 기회를 가질 수도 있어 정말 큰 의미를 가졌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바쁘고 스트레스가 심하여 혼자 살아가기에도 힘든 현대 사회에서는 부부로서 한 가족을 이루고 살고 있다는 것만 해도 정말 대단한 일인 것 같습니다.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함께 하고 싶은 마음으로 결혼한 만큼 계속해서 행복하게 지내면 좋겠지만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함께 살면서는 의견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게 되죠. 이는 자연스러우면서도 필연적인 일이라고 봐도 무방한데요. 한 사람의 마음만 가지고 이야기를 하더라도 마음은 항상 변화합니다. ‘할까 말까’, ‘만날까 말까’, ‘살까 사지 말까’, ‘먹을까 먹지 말까’ 등의 내적 갈등이 수시로 일어나는 것, 또 이미 자기가 한 일이라도 결과가 좋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후회를 하면서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을 보게 되니까요. 혼자서도 그런데 나와 전혀 다른, 타인의 마음이라는 변수가 더해진다면 아무리 가족이지만 갈등을 피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라는 의문이 듭니다.

의견이 다른 것이야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부부간에 서로 갈등이 커지면서 감정 싸움이 되고 나중에는 심지어 이혼까지 생각할 정도로 문제가 깊어지는 경우에는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까요? 위기를 겪더라도 다행히 지혜롭게 갈등을 해결해 나가는 경우에는 오히려 그 관계가 단단해지고 성숙해지는 경우를 봅니다. 하지만 서로가 이해가 되지 않고 각자 도저히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어 정면으로 대립하게 되는 경우에는 교착 상태에 빠지게 되죠. 해결이 되지 않는 상태로 서로 같은 이야기만 반복하게 되어 답답합니다. 더 이상 진전을 보기 어렵다는데 합의하게 되면 이혼까지 이어질 수 있어 두렵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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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생활이 부부만의 파국으로 종결이 되는 것 자체로도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더 힘든 것은 자녀가 있는 경우지요. 어린 자녀에게 부모 간의 이혼은 자신의 존재 이유에 의문을 제기하게 하는, 그 자체로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경험을 안겨주게 되는 것이니까요. 부모도 그 사실을 알기에 마음만으로는 이혼을 하고 싶지만 그 결정을 끝없이 망설이게 됩니다. 이처럼 부부간에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고 느끼고, 부부 사이의 대화만으로는 평행선을 달리지만 그래도 결혼 생활을 이어가겠다는 마음이 있는 분들의 경우에는 의외로 조력자의 도움이 유효할 때가 많은데요.

많은 다른 조력자가 있을 수 있겠지만 여기서는 정신건강의학과에서의 상담에 대해 말씀 드려볼까 합니다. 제가 치료했던 한 부부의 이야기를 들려 드릴게요. 남편과 아내가 자신에 대한, 그리고 상대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얼마나 관계가 나아질 수 있는지 봐주세요. (내용은 충분히 각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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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두 분이 내원하셨습니다. 함께 부부 상담을 진행한 것이 아니라 각자 개인적으로 치료를 진행했습니다. 개인치료의 형태였기 때문에 서로의 이야기를 절대로 전달하지 않고 상대에 대한 비난에는 동조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했죠.

처음에는 남편께서 아내에게 문제가 있다고 이혼까지 고민한다며 함께 오셨습니다. 아내의 표정이나 태도를 보면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원하는 것을 말하지는 않으면서 은근히 자신을 불편하게 만든다면서 말이죠. 남편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내가 자꾸 시비를 건다고 하셨어요. 무엇이 문제인지 물어도 대답을 하지 않고, 불편하게 만드는 태도를 일관하니 묻다묻다가 결국 남편 자신이 답답해서 폭발하게 된다고 말이죠.

남편의 속사정

묵묵부답에 불만가득한 아내의 표정!
아내의 묵언시비로 결국 오늘도 폭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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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의료계에 종사하시는 50대 남성으로 유복한 집안 출신으로 충분히 능력도 있고 사회적으로 인정받아온 점잖으신 분이었는데요. 상담을 진행하면서 어린 시절부터 모진 어머니 밑에서 작은 실수에 대해서도 인격 모독을 당하는 등 정서적인 학대를 받고 성장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타인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를 형성하지 못하고 감정보다는 논리와 이성으로 세상과 사람을 이해하려고 하면서 지나친 원리원칙을 고수하게 되었죠. 망상 수준은 아니었지만 타인으로부터 피해를 입거나 공격을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본능적으로 느껴 사회적인 상황에서 불안 증상도 겪으셨죠.

본인이 타인을 위협적으로 느끼니 본능대로 방어적으로 대하게 되고, 이성으로 이해나 해결이 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화가 나니 감정 표현도 과격하게 나가는 편이었습니다. 여기에 아내의 행동이 남편이 받아들이기에 오해를 산 부분이 있었던 것인데요. 아내의 행동이 왠지 공격적으로 느껴지고, 본인의 이성으로 이해되지 않으니 아내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저속한 단어까지 사용하게 된 거죠.

아내의 속사정

뭘 또 오해한 건지, 남편이 과격하게 폭발하니 불안해요.
그냥 집안일이나 알아서 했으면 좋겠습니다.

반대로 아내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남편이 집에서 정작 하는 일은 없으면서 자신만의 원칙을 강요한다는 점, 덧붙여 자신이 무심코 한 행동에 대해서 남편이 악의를 가지고 한 행동이라고 오해를 하는 것 같다고 하셨어요. 평소에 남편으로부터 과격한 감정 표현을 듣고 지내다 보니 두려움이 항상 잠재해 있었고요. 앞서 언급한 부분을 포함해서 남편이 집안일을 스스로는 하지 않고 하고도 생색을 내는 등 생활 측면에서도 불만인 부분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부정적인 감정이 많이 누적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감정들을 직접적이고 언어적인 표현이 아닌, 대답을 하지 않거나 상대의 요청에 대한 행동을 미루는 수동공격적인 방식을 통해 간접적으로 표현하였기 때문에 남편이 자극을 받기 쉬웠습니다. 아내도 처음에는 이런 자신의 감정 표현 방식을 의식하지 못하셨어요.

아내는 50대 여성으로 사회적으로 능력도 있고 대인관계도 문제없이 지내는 훌륭한 분이었습니다. 성장 배경을 보면 고전적인 여성상을 강조하시는 엄격한 부모님으로부터 자라면서 대기업에서 높은 직책으로 일을 하면서도 집안일과 육아까지 만능으로 해내야 하는 완벽주의와 책임감을 안고 사셨어요. 다만 집에만 오면 남편과의 관계에 대한 불안이 시작되었죠. 일 하면서 지친 몸을 안고 귀가를 해도 할 일이 잔뜩 쌓여 있었고, 놔둔다고 남편이 할 것이라는 기대가 생기지 않아 묵묵히 일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고, 남편에 대한 화가 커져갔습니다. 아내로서는 이렇게나 열심히 살고 있는 자신의 태도를 문제 삼는 남편의 이야기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으셨던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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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케이스에서는 부부 모두 적절한 약물치료와 상담을 통해 각자가 보다 성숙해지는 변화를 체험하셨고, 다행스럽게도 두 분의 관계에서 대부분의 갈등이 사라지고 가족 관계를 이어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 여기에서 아내는 그대로인데, 남편이 타인을 덜 위협적으로 느끼고 아내의 감정을 더 잘 이해하게 되며, 감정 표현의 방식이 부드러워진다고 하면 둘의 관계가 나아질 수 있을까요? 또, 남편은 그대로이지만, 아내가 완벽함과 책임에 대한 강박을 내려놓음으로써 집안일에 대한 부담을 덜 느끼고, 남편이라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되며, 세련되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된다면 둘의 갈등이 줄어들 수 있을까요?

만약 여러분의 생각에도 위 두 질문에 대한 대답 각각이 ‘그렇다’ 라면 부부 중 한 분의 상담과 치료만으로도 실제로 부부 관계 개선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실제로는 위의 케이스와 달리 부부 중 한 분만 치료받는 경우가 더 많은데요. 한 분만 치료 과정에 있으시더라도 자신에 대한 이해와 배우자에 대한 이해, 의사소통 방식의 변화를 통해 스스로의 마음에 평화가 찾아올 뿐 아니라 부부 관계도 많이 개선되어 가는 것을 치료자로서 자주 경험하게 됩니다. 물론 두 분 모두에게 동기가 충분하다면 부부 상담도 좋은 선택입니다.

모쪼록 고민하시는 분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요. 이 글을 보시는 모든 부부들께서 행복한 결혼 생활을 이어 나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본고는 집필자의 개인의견이며, 한국사회보장정보원의 공식 입장이 아님을 밝힘

글·고대욱 원장(마음쉼정신건강의학과의원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수련 전문의, 현재 유튜브 채널 ‘마음쉼TV’를 운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