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Aug. 2014
지난호보기
아이 즐거워요

예방접종보다 괴담이 더 무서워요

글. 추혜인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살림의원 원장)
추혜인 박사

만 12세 소녀들에 대한 인간유두종바이러스백신(일명 자궁경부암백신) 필수 접종 정책을 앞두고, 인터넷에서는 각종 괴담이 떠돌았습니다. 거대 제약회사의 돈벌이에 정부가 휘둘리고 있다, 소녀들의 건강과 안전을 볼모로 무서운 임상 시험을 하려고 한다, 전세계적으로 보고된 백신 부작용을 의료전문가 집단이 자신들의 이권을 위해 무시하고 있다 등등 많은 괴담들이 인터넷을 후꾼 달구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일선 병의원들에서 인간유두종바이러스백신을 많이 접종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그런데 더 무서운 것은 인간유두종바이러스백신으로 시작된 이 괴담이 독감 예방접종에 이어, 아이들의 필수예방접종에 이르기까지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백신은 부작용 보다 예방효과 커

일명 ‘자연주의 치료’라고 하여 아이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질병에 걸려 면역력을 획득하게 하자는 얘기들이 있어요. 이것은 ‘질병’에는 여러 종류가 있으며, 각각 다른 방식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것을 잘 모르는 개념입니다. 어떤 질병은 특별한 후유증 없이 잘 낫고, 나은 후에 자연스럽게 면역력을 획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질병은 영구적인 후유증이 남거나, 심한 경우 사망까지 초래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이 각각의 질병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치료법, 서로 다른 치료전략이 필요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영구적인 후유증이 크거나 사망률이 높으면서 사회적으로 유행할 가능성이 높은 감염성 질환의 경우 적극적으로 백신을 만들어 대처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얘기이지요.

많은 ‘자연주의 치료’와 관련한 자료들이 일본에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일본은 흔히 얘기하는 선진국들 중에서 예방접종에 대한 불신이 유난히 높은 나라 중 하나입니다. 세계보건기구에서 정기예방접종으로 권고하는 MMR 백신이 일본에서는 국가백신 스케줄 안에 들어와 있지 않습니다. 1998년 MMR(홍역, 볼거리, 풍진의 복합백신) 백신이 자폐를 유발한다는 논문이 유명한 의학잡지에 실린 이후 국민들의 불안이 증가하자, 일본 정부는 MMR 혼합백신을 포기하고 원하는 사람에 한해 부분적으로 예방접종을 맞도록 했습니다. 결과는 볼거리와 풍진의 백신 접종율이 바닥으로 떨어졌고, 이로 인해 2009년 볼거리 유행을 겪어 후유증인 청각장애 유병율이 높아진 바 있습니다. 그 후 2013년에는 풍진 유행을 겪었고요, 이로 인해 1000명 이상의 선천성 풍진으로 인한 기형아들이 태어난 것으로 보고되었습니다.

그렇다면 MMR 백신이 자폐를 유발한다는 논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요? 결론적으로 그 논문은 연구 의사의 연구윤리 위배, 데이터 조작, 백신후유증 소송을 맡은 변호사집단으로부터의 금품수수 등의 문제가 불거져 논문으로서의 가치를 잃고 의학잡지 게재도 취소되었습니다.

저는 백신이 안전하니까 무조건 맞으라는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자연주의 치료’라는 이름으로 확산되고 있는 주장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알고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이죠. 백신의 부작용은 당연히 있습니다. 급성 알레르기 반응을 비롯, 발열, 통증, 출혈, 감염, 신경학적 합병증까지 다양한 이상반응이 보고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국가예방접종사업에서 권장하는 백신의 경우에는 이상반응에 비해 백신 접종으로 인한 예방효과가 더 크다는 것이 잘 알려져 있습니다.

 

감염성 질환의 유행을 막는 ‘군중 면역’

예방접종은 결국은 선택의 문제입니다만, 저는 이 선택에서 한 가지만 더 고려하면 좋겠습니다. 그것은 바로 ‘군중 면역’입니다. 우리 사회에는 백신을 맞고 싶어도 심각한 부작용이나 면역력의 저하 때문에, 혹은 아직 백신을 맞을 수 있는 연령이 되지 않아서, 또는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백신을 맞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방접종을 받아 ‘군중 면역’이 형성되면, 그 감염성 질환은 덜 유행하게 되고, 백신을 맞은 사람뿐만 아니라 맞지 않은 사람에게까지도 혜택이 돌아가게 됩니다.

어떤 분이 제 진료실에 찾아와서 “제 아이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예방주사를 맞지 않았는데, 아직 큰 병에 걸리지 않았어요. 예방주사는 정말 무용한 것 같아요”라고 말씀하셨을 때, 저는 ‘군중 면역’에 대해 설명해 드렸습니다. 당신의 아이가 홍역, 수두, 소아마비, 뇌수막염에 걸리지 않았다면, 그것은 당신의 아이를 둘러싸고 있는 95% 이상의 아이들이 그 예방접종을 받아서 ‘군중 면역’이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요. 다른 아이들 덕분에 그 질환이 유행하지 않아서 당신의 아이가 안전할 수 있었던 거라고요. 그리고 만약 ‘군중 면역’이 약해질 정도로 당신과 같은 사람들이 많아지게 된다면, 가장 먼저 위험해지는 것은 당신의 아이일지도 모른다고요. 제가 너무 무섭게 협박을 했나 나중에 살짝 후회하기는 했지만, 예방접종을 맞추지 않았는데도 질환에 걸리지 않았다고 자랑하는 부모님들이 ‘그것이 다른 아이들 덕분이라는 사실’만은 제발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백신과 관련한 괴담 끝에는 항상 이런 댓글들이 달립니다. “의사 너희들은 맞느냐? 이 위험한 걸 너희 자식들에게는 맞추기는 하느냐?” 네, 맞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의사들이 본인과 가족의 예방접종을 잘 챙기고 있습니다. 저로 말씀드리자면, 의사 면허증을 딴 이후로 매년 빠짐없이 독감 예방접종을 맞고 있으며, 지금 일하고 있는 협동조합에서도 함께 일하는 직원들과 그 가족들까지 독감 예방접종을 챙기고 있습니다. 저부터 건강해야 진료실을 찾는 환자들을 건강하게 진료할 수 있다고 믿고, 또한 환자들에게 감염성 질환을 옮기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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