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영월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지호 할머니는 여름 휴가철이면 밀려드는 손님으로 정신이 없다. 게다가 맞벌이를 하는 아들과 며느리를 대신해 손자를 돌봐야 한다. 아이 보랴 손님 맞으랴, 손이 열 개라도 모자랄 판. 그렇지만 올 여름엔 숨통이 트였다. 영월 꿈나라어린이집에서 시작한 일시보육서비스 덕분이다. 지호를 잠깐씩 어린이집에 맡기고 일을 볼 수 있었다.

전업주부인 찬우(가명) 엄마는 몇 개월 전 둘째 아이를 낳았다. 출산의 기쁨은 오래 가지 않았다. 갓난아기를 돌보면서 첫째 아이 뒷수발을 하다보면 하루하루가 전쟁 같았다. 표정은 어두워졌고, 문득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횟수가 늘어났다. 그러다가 지인을 통해 일시보육서비스 이야기를 듣고 꿈나라어린이집을 찾았다. 잠깐이나마 첫째 아이를 맡겼다. 며칠이 지나자 찬우 엄마의 얼굴에 햇살이 비추기 시작했다.

올 6월부터 시범사업으로 시작된 일시보육서비스가 호응을 얻고 있다. 이는 보육자의 부득이한 사정 및 사고 등 긴급한 상황이 발생하거나 일시적으로 보육이 필요한 경우 이용하는 서비스이다. 올 12월까지 시범사업이 진행되며, 현재 9개 시군구, 16개 어린이집에서 일시보육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용금액은 시간당 4천원이며 이중 2천원은 정부가 지원한다. 아동 1인당 월 40시간 한도이고, 이를 초과할 경우 전액 본인부담이다. 온라인 및 전화로 사전예약하거나, 긴급할 경우 당일 전화신청도 가능하다.

전국 최초로 일시보육서비스를 시작한 강원도 영월 꿈나라어린이집 원지언 원장은 “일시보육서비스는 육아스트레스 해소, 산후우울증 예방에 큰 도움을 주고 있으며 출산장려 차원에서도 꼭 필요한 서비스”라고 강조했다. 현재 꿈나라어린이집의 일시보육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아동은 5명이다. 1급 보육교사자격증을 갖춘 주임교사가 일시보육을 맡고 있다. 연령대가 다른 아이들의 여러 욕구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보육경험이 많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일시보육 아동을 대상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는 실질적으로 어려운 게 현실이다. 원지언 원장은 “저마다 다른 아이들의 상태에 따라 대응하는 것만으로 신경을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은 힘들고, 일시보육 정원도 시간당 5명 이내가 적당하다”고 말했다.

꿈나라어린이집은 아이들 쉼터 역할을 하는 보육실(유희실)에서 일시보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조만간 증축을 통해 별도 공간을 마련할 계획이다. 원 원장은 “당초 일시보육 어린이집에 환경개선비로 2천만원이 지원되는 걸로 알았는데, 공립 어린이집만 해당된다는 통보를 받고 아쉬웠다”며 “그렇지만 영월군에서 5백만원을 지원하기로 해서 여기에 자체 대출금을 받아 공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경영논리로 일시보육서비스를 시작한 건 아니라며 “이용하는 아동이 있는 한, 계속 운영할 것이”이라며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일시보육서비스는 어린이집 총정원 내에서 운영되고 있는데, 농어촌 지역은 예외적으로 총정원 외에 별도로 일시보육반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하면 더욱 안정적이고 체계적인 일시보육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겁니다.”

영화 <케빈에 대하여>에는 커리어우먼으로서 자유로운 삶을 즐기던 여행가 에바가 아이를 낳으면서 혼란을 겪는 모습이 그려진다. 아이를 안고 기뻐하는 남편과 달리 에바는 멍한 표정이다. 출산의 기쁨보다는 발목 잡힌 현실이 먹먹하기 때문일 터. 그 아이는 어려서부터 엄마와 대립하고, 결국 끔찍한 일을 저지른다. 다소 극단적인 상황설정이지만 엄마가 된다는 것의 힘겨움, 특히 산후우울증, 육아스트레스에 대해 주목하게 만든 영화이기도 하다.

일시보육서비스는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해진다고 보고 육아에 지친 엄마의 마음을 보살피는 일이다. 걱정 없이 아이를 낳고 키우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일시보육서비스가 널리 확산되어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