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아이사랑)

[웹진 아이사랑 제56호] 부부탐구중

부부탐구중 독박육아 VS 독박벌이
아내
남편의 휴일이 나에게는 지옥입니다.
눈에 안보이면 차라리 낫습니다.
하지만 남편이 쉬는 날에는 몸과 마음이 무너집니다.
남편은 눈 뜨면서부터 잠들기까지 휴대폰 게임에 코를 묻고 있어요. 그러다 청소기를 밀고 있는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며 혼자 끼니를 챙겨먹어요.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는 척 하지만 사실은 서운함에 복받칩니다. 저는 왜 이렇게 상대방의 행동 하나하나에 반응이 될까요? 그러다가 남편이 울고 있는 아이를 신경질적으로 안거나 물건 낚아채듯 들어 올리면 꽥 소리가 질러져요. 그러면서 말싸움을 한바탕하면 하루 종일 편두통에 배앓이에...악순환입니다.
그 사람의 세계에서 빠져나와 무심하고 싶은데, 실상은 온갖 주파수가 남편에게 맞춰져 있는 건 왜일까요?
남편
생기를 잃은 아내, 왜 내 탓인가요?
아내가 청소를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라면이 퉁퉁 부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아내는 왜 한 달에 한 번 쉬는 제 휴일에 대청소를 하는 걸까요? 제가 집에서 숨 쉬는 것도 싫은 내색을 하니 아무것도 함께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도 다른 아빠들만큼 우는 아이를 달랠 수 있습니다. 다만, 아내가 원하는 방법이 아닐 뿐이지요. 딸아이라고 해서 소꿉놀이만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부쩍 아프다 소리를 하며 약을 달고 사는 아내가 걱정되지만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병원에서야 스트레스성 두통이라고 하죠. 스트레스로 치면 생업을 책임지는 나만 하겠습니까? 아내가 생기를 잃고 아픈 것이 왜 내 탓인가요? 나도 아픕니다. 나도 힘들어요.
답변
많이 힘드시겠습니다. 남편이 쉬는 날에 아내께서 몸과 마음이 무너진다는 말에 제 마음도 무너지는 것 같습니다. 아내가 숨 쉬는 것조차 싫은 내색을 할 때 남편분이 느꼈을 수치심과 부적절감에 제가 다 숨고 싶어집니다.

한 때는 두분이 핑크빛 미래를 꿈꾸었던 때가 있었겠지요? 결혼은 현실이라고 하던데, 이제는 지옥이 되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할 것 같습니다. 이 부부의 갈등은 육아와 청소같은 가사분담의 문제, 또는 식사시간과 스트레스의 책임 소재로 인식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문제는 관계 갈등의 문제라고 여겨집니다.

아이이든 어른이든 책임감 있는 행동을 하기 위한 모든 의지의 원천이 사랑일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고 지지해주는 대상으로부터 얻어지는 용기 덕분에 힘든 일을 견디어 낼 수 있는 것이겠지요. 이런 사랑이 수요만 있고 공급이 없을 때 수 많은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래서 인생살이에서 가장 힘든 것이 사람과의 관계이고, 그 중에서도 사랑하는 사람과의 갈등이 가장 힘들겠지요?
 
사랑을 철회한 당신, 배우자에게 벌을 주고 있지 않나요?
이 부부는 상대 배우자로부터 서운한 것이 있었나 봅니다. 그래서 벌을 주려고 배우자에 대한 사랑을 철회한 것 같습니다. 이로 인해 나로부터 사랑을 못 받는 상대도 사랑에 굶주리고, 상대로부터 사랑을 못 받는 나도 사랑에 굶주리게 되겠지요. 그리고 둘 다 생산적인 행동을 못하게 됩니다. 그리고 악순환이 계속되지요. 이런 상황을 세간에서는 ”너죽고 나죽자“ 라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두 분이 서로 사랑하고 함께 있어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겠지요. 지금도 그때가 그립고 그 때로 돌아가고 싶겠지요. 배우자가 예전의 그런 사랑과 존중을 해주지 않는 것이 서운한 거겠지요? 아내분은 남편이 먼저 나를 사랑해주면 나도 당신을 존중하겠다고 맘먹고, 남편분은 아내가 먼저 나를 존중해주면 나도 너를 사랑해주겠다고 맘먹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천국과 지옥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진수성찬이 차려진 잔치가 열렸는데, 팔 길이 보다 더 긴 젓가락만 있는 거예요. 그래서 내 손으로 그 맛있는 음식을 내 입에 넣을 수가 없는 거죠. 얼마나 안타까울까요? 지옥에 갔더니 모두가 자신만 먹으려고 하니 아무도 먹을 수가 없고, 천국에 갔더니 서로 먹여주니까 모두가 먹을 수 있더라는 거예요. 가정도 남편과 아내가 서로를 위하면 천국이 되고, 자신만 위해달라고 하면 지옥이 되는 것이겠지요?

엄마 아빠가 천국에서 살면 아이도 천국에서 살게 되고, 엄마 아빠가 지옥에서 살면 아이도 지옥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아이에게 좋은 음식과 좋은 집에서 좋은 옷을 입혀야 건강한 아이로 자라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자녀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서적인 안정이겠지요.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부모라면 서로 싸우고 각자 지옥에서 살아도 상관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를 사랑하는 부모라면, 적어도 아이의 심리적 환경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는 부모라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내가 먼저 천국을 만들 책임이 있어요!
상대 배우자가 천국을 만들어 놓으면 나는 거기에서 살겠지만, 배우자가 지옥을 만들어 놓으면 나도 지옥에서 살 수 밖에 없다는 태도는 아닐 것입니다. 아이를 사랑하는 부모라면 내가 먼저 천국을 만들 책임을 느낄 것입니다. 내가 먼저 배우자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의 씨앗을 키울 것입니다. 사랑이란 상대방이 받았을 상처에 내 가슴이 저미는 것을 의미하겠지요. 그래서 어떤 분은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지금의 의식 수준이 미래의 형상이다.“라고요. 지금 예쁜 마음을 만들 수 있는 능력만큼 나중에 좋은 일이 많이 생긴다는 뜻이겠지요.

관계의 속성을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혈연관계이든 계약관계이든 이 관계를 보장해 주는 것은 어떤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단지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될 때에만 이 관계 유지가 가능할 것입니다. 결혼식을 올렸으니까 우리에게 아이가 있으니까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는 벌을 주어도 우리의 관계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겠지요.

또 부부관계 뿐만 아니라 모든 관계는 늘 보상과 댓가가 함께 따라 다닙니다. ”내가 옳고 네가 틀렸다.“ 라는 힘 욕구는 사랑의 상실을 댓가로 지불해야 합니다. 상대 배우자에게서 사랑과 존중을 받으려면, 나는 무엇을 댓가로 지불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아무 댓가도 지불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무조건적인 사랑은 이상적이기는 하나 부모와 자식 관계에서도 어렵습니다. 하물며 부모에게서도 받지 못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배우자가 해주기는 어렵습니다. 아내는 내 어머니도 아니고, 남편은 내 아버지도 아니니까요.
 
관계 갈등, 혼자 해결하려기보다 도움을 요청하세요!
부부싸움같은 사적인 얘기를 남에게 말하는 것이 부끄러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부부에게나 어느 정도는 다 발생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혼자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개방하여 도움을 요청하는 태도는 아주 용기있는 행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겪는 고통이, 우리가 그것을 계기로 더 성장할 수 있다면, 지금보다 더 행복한 삶을 위한 또 하나의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
글·박광석(서울상담교육연구소 소장)

개인 및 집합교육을 통해 내담자의 생각과 행동을 분석하고, 아픈 마음을 스스로 치유하도록 돕는 전문 상담자입니다.
역서 ‘불행한 십대를 도우려면’ (Unhappy Teenagers) by. Dr. William Glasser